두 번째 인류

➤ 5월에 개장했던 3d 커뮤니티, <두 번째 인류>의 진상입니다. 

사람에 따라 허무하거나 찝찝한 엔딩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한스 블록의 저서, '두 번째 인류'를 올해의 도서로 추천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살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의식을 Ctrl+C, Ctrl+V 할 수 있는 디지털 세상!

  https://youtu.be/SaovWiZJUWY 

 

  위 영상에 나오는 것은 제가 참 좋아하는 예쁜꼬마선충입니다.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길이 약 1mm의 작은 벌레죠. 예쁜꼬마선충은 생명과학사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다세포 생물 가운데 처음으로 전체 유전자 지도가 밝혀진 생물이 바로 이 친구이기 때문이에요. 우리 지구의 연구자들은 선충을 수천 장의 얇은 단면으로 나누어 정밀하게 기록했고, 그렇게 하나씩 이어 붙여 완전한 신경망 지도를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도를 바탕으로 만든 컴퓨터 코드가 있습니다. 단순한 코드가 아니라, 실제 예쁜꼬마선충의 움직임과 반응을 거의 그대로 재현해 내죠. 이 프로그램을 로봇에 탑재하면, 살아 있는 선충처럼 기어 다니며 환경에 반응합니다. 즉, 실험실의 생물을 데이터와 알고리즘 차원에서 복제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우리 인류에게 까다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컴퓨터 속에서 재현된 이 존재를 단순한 모형으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일종의 ‘실존’으로 간주해야 할까요? 아마 이 생물만으로는 감이 잘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관점을 바꿔봅시다. 만약 언젠가 인간의 신경망을 전부 해독해 프로그램으로 옮길 수 있다면, 그 가상 인간은 사고하고 의문을 제기하며, 자신을 ‘존재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를 우리와 동일한 인간으로 볼 수 있을까요? 만약 컴퓨터 속 그 존재가 내 가족, 친구, 연인이라면, 그 가상 인간과 실제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동일한 인간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요? 

  덕후 토크는 이쯤에서 마치고, 이제 진짜 진상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가상지구, 유전자 지도,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통속의 뇌까지—감이 조금 오시련지요. 이 커뮤니티의 바탕이 되는 세계는, 미-친-과-학-자가 “완벽한 지구” 구현에 실패한······ 대충 729번째 가상지구입니다. 완벽하지 못하기에 멸망한 세계처럼 보이는 겁니다. 미-친-과-학-자의 실험 목표는 지구와 동일한 환경을 컴퓨터 속에 재현하는 것이었어요. 재현한 세계에 인간들을 넣는 거까지도요. 예쁜꼬마선충 실험처럼, 똑똑한 미-친-과-학-자에게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알아내는 일은 아주 쉬운 일이었습니다. 유전자 지도(신경망)를 기반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작성하면, 그 지도 주인과 동일한 행동 패턴을 보이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집니다. 프로그램을 탑재한 시뮬레이션 인간은 오리지널과 완벽하게 똑같이 움직입니다. 지금의 ‘우리들’이 그런 것처럼요. 나이도, 성별도, 직종도, 하물며 살아온 배경마저 제각각인 '우리들'이 대체 왜 타겟이 되었던 걸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본래의 지구에서 '우리들'이 임상 실험에 지원했었거든요. 몸에 해로운 것도 아닌데 보수까지 두둑하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거예요. 물론 그 이면에는 저마다의 숨겨진 사연이 더 있었을 수도 있겠죠. 그날의 선택에 담긴 상세한 백스토리는 자유로운 해석으로 완성해 주세요. 하지만 한 가지. '우리들'은 그 결정이 최소 729명의 ‘나’를 만드는 시작이 될 줄은 몰랐을 겁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아시는 그대로의 전개. 

Q. 왜 하필 '좀비' 아포칼립스인가. 
   A.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불러오는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나, '좀비'의 모습과 비슷한 존재가 태어난 겁니다. 공격성은 있으나 감염력은 없습니다. 주변이 마치 멸망한 세계처럼 보이는 것도 지구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생긴 충돌의 부산물이에요. 

Q. '두 번째 인류'는 무슨 뜻인가.
   A. 좀비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길 노린 페이크였습니다. 잘 속아주셨으련지요? 진상을 읽으셨다면 짐작하셨겠지만, 이 제목에서 말하는 '두 번째 인류'는 바로 '우리들'을 뜻합니다. 

Q. 시뮬레이션 속 '우리들'은 정확히 어느 정도의 기억이 없는 건가. 
   A. 이 글을 읽다가 갑자기 제6차 세계 대전이 벌어진 세계에서 눈을 떴다고 상상해보세요. 이전까지의 개인적인 기억들은 모두 그대로 남아 있지만, 왜 전쟁이 벌어진 건지, 왜 6차까지 온 건지에 대해서는 모르실 겁니다. 그런 상태라고 보시면 됩니다.